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엔조 연재글 - 7
"변하지 않는 가치, 금관"
영원히 변하지 않는 가치, 일곱번째 이야기 - 금관

엔조는 변하지 않는 가치의 일곱 번째 순서로, 금관으로 정했습니다.
금관은 정교한 세공기술, 독특한 외관과 화려한 장식이 돋보이는 예술품이자 문화유산입니다.
한국 문화의 전통과 아름다운 미를 담고있는 금관에서 변하지 않는 가치가 숨어있지 않을까, 지금 찾으러 갑니다.






처음처럼
엔조연재글 도입부
다섯 개의 화려한 숲

사람들은 관심있는 물체를 보고 어떤 물체의 모습을 모티브로 표현하였는지 궁금해합니다.
예를 들어, 한 때 아이폰의 형태를 가지고 많은 얘기들이 있었는데, 신라 금관의 세움장식을 가지고 사슴뿔 모양인지, 나뭇가지 모양인지를 놓고 많은 얘기들을 하곤 했습니다. 지금도 이어지고 있습니다. 또는 산자형(山)인지, 출자형(出)인지 하면서 세움장식의 모양을 해석하곤 했습니다.하지만, 신라 금관의 세움장식은 김알지 신화의 무대이자 신라의 국호인 계림의 신성한 숲을 상징한 것입니다. 따라서 세움장식의 형상은 사슴뿔이 아니라 나무에서부터 비롯되었다고 할 수 있습니다.초기의 금관이나 금동관은 대부분 세그루의 나무로 장식되었으며, 그 세그루로 숲을 상징하기에 충분하지만, 초기와 달리, 금을 다루는 기술이 더 발달하고 국력이 축적되자 더 정교하고 더 상징적이며 더 화려한 금관을 만들기 시작했습니다. 따라서, 대표적인 신라금관에는 다섯 그루의 나무가 우뚝하게 금관을 장식하게 되었습니다.
그 금관은 금관총 금관, 금령총 금관, 서봉총 금관, 천마총 금관, 황남대총 금관으로 다섯 그루의 세움장식은 세 그루의 세움장식의 금관보다 더 신성하고 더 대단한 숲을 나타냅니다.
금관은 왕의 권력을 상징하는 것이며 거대한 숲을 표현한 것입니다.

곡옥이 달린 금관



금관에 장식되어 있는 곡은 비취색인데,
이 곡옥은 장식용 구슬 중 하나입니다.



곡옥의 형태를 보면
다양한 형상들이 떠오릅니다.
구멍이 있는 굵은 곳을 머리라 하고,
가는 곳을 꼬리라 부르며

반달형, 쉼표형, 강낭콩 등 각진형태가 아닌,
윗부분은 크고 굵으며 아래로 내려갈수록
점차 가늘어지면서 꼬부라지는 형태입니다.
곡옥 확대컷곡옥 귀걸이
신라금관2신라금관3
신라는 삼국 중 가장 먼저 세워진 시대입니다. 가장 먼저 세워진만큼 앞서 발전을 했을테지만 그렇지 않습니다.
가장 먼저 세원진 것도, 가장 늦게 발전한 것도 신라입니다. 이 글을 쓰면서, 동화책 '토끼와 거북이'가 떠올랐습니다.

우리나라는 항상 '빨리빨리'라는 말을 입에 달고 살지만, 빠르다고 항상 좋은거라 생각하지 않습니다.
'토끼와 거북이'처럼 느린 거북이라고 빠른 토끼보다 항상 뒤쳐지지 않습니다. 왜나하면 느린 거북이가 승리를 했으니깐요.
마찬가지로 빠른 토끼보다 느린 거북이, 신라에서 가장 화려한 금관들이 발견되었습니다. 세계적으로 가장 화려한 금관들이 경주 지역을 중심으로 분포되었으며, 그 중 한 금관은 경주의 대공원 바로 옆인 노서동에서 우연히 발견되었습니다. 노서동에 사는 한 주민이 집터를 파다가 우연히 발견하였고, 그 누구도 금관이 발견될거라 상상조차 못했지만, 금관을 비롯해 수많은 유물들도 함께 발견되었습니다. 그 후, 그 곳은 금관이 발견된 곳이라 하여 '금관총'이라 불립니다. 처음 금관이 발견되었을 때, 금관 표면에 묻은 먼지와 때를 닦아내자 근 1,500년 전의 찬란했던 그 모습 그대로 드러났습니다.
금의 특성상 부식되지도 않았고 보존상태가 좋았습니다. 우리가 현재 박물관, 책, 컴퓨터에서 보는 그 모습대로 존재하고 있습니다. 금관은 땅 속에서나 땅 밖에서나 자신의 모습을 그대로 보존하며, 자신의 위치에서 가장 화려한 모습으로 빛나고 있습니다.

금관에서 무엇을 찾아볼 수 있을까요?
어떤 요소들이 어떤 형태로 숨어있을까요?
그 요소 속에서 느낄 수 있는 의미는 무엇이며, 어떤 형태로 존재하고 있는지, 가봅시다.

설화가 살아있는 곳, 계림

계림과 관련된 설화를 아시나요?

숲 속에서 이상한 닭 울음소리가 들리기에 가보니 나뭇가지에 금빛의 궤가 걸려 있었습니다.
그리고 그 아래에서 흰 닭이 울고 있었는데, 그 궤 속 안에는 신라 김씨 왕조의 시조가 되는 김알지가 있다는 설화에서 유래했답니다. 신라 금관의 역사가 짧아도 그 속에는 아직 숨쉬고 있습니다.
설화가 살아있는 곳, 김알지의 탄생설화를 간직하고 있는 계림을 통해서 신라 금관이 담고 있는 형태를 풀어나가보려 합니다.



금관에 달려있는 곡옥은 김알지 신화의 상징을 형상화한 것입니다. 나뭇가지의 황금궤 안에 들어있던 아기를 형상화하고 있는 것이 바로 곡옥입니다. 곡옥의 형상은 태아의 모습과 일치합니다.
사람을 비롯한 포유동물은 물론 다른 동물의 태아도 곡옥과 같은 모습입니다. 곡옥은 왕권의 상징이었기 때문에 왕족이나 귀족 모두가 몸에 지니고 다니던 부적과도 같은 것이었으며, 특히 신라에서는 왕족이나 귀족들 사이에 즐겨 사용하였습니다. 금관 이외의 목걸이, 귀걸이, 허리띠 등에 달개와 함께 매달아 화려하게 장식하였습니다. 그 속에는 신라의 정신이 배어있으며, 신라인의 꿈과 염원이 담겨있습니다.

즉, 나뭇가지 끝에 돋아있는 '움'이 식물의 태아이자 생명력을 나타내며, 인간의 태아를 상징하는 곡옥은 동물의 태아이자 생명력을 나타내 둘 다 같은 의미를 지닙니다.
신라금관흑백사진
생명의 상징 '움'

금관 이야기

사람들은 금관을 왕이 착용하지 않고, 왕이 죽었을 때 장례용으로 특별하게 만든 부장품으로 알고 있을수도 있습니다. 그 이유는 금관이 평소에 착용하기에는 실용성이 떨어지기 때문에 부장품으로 사용했을거라 생각한 것입니다. 금관의 무게가 1kg으로 머리에 쓰기가 무거웠을테고, 구조가 약하기에 착용하지 않았을거라 생각했을 것입니다. 또한 금관말고도 허리띠도 3kg의 무게가 나가고, 신발도 342mm 크기로 무거워서 착용하지도 움직이지도 힘들었을거라 생각했기에, 사람들은 부장품이다라고 확신한 것 같습니다. 하지만, 금관은 부장품이 아닙니다.
'신라 금관의 기원을 밝힌다' 책을 읽고, 금관은 왕의 의전용으로 착용한 것인 걸 알게 됐습니다. 금관과 같은 왕관을 실용품으로 인식하기보다는 왕권을 상징하는 의전용 금관입니다. 즉, 부장품이 아닙니다.
금관이 사라진 시기는 4세기 후기에 나타나 7세기에 들어서면서 사라져버렸습니다. 만약 부장품으로 만들어진 것이라면 장례 전통이 계속 이어져야 맞다고 생각을 하는데, 오래가지 못하고 그렇게 끝나고 말았습니다. 지금 저희도 장례식을 갈 때면, 검은 의복을 입고 가야하고, 손톱의 메니큐어, 장신구 등 하지 않고 가는 전통이 계속 이어지고 있는 반면에 금관은 그렇지 않았습니다.
금관이 사라지던 시기는 바로 당으로부터 신라 왕실의 관모가 통제 받던 때였습니다. 당의 사서에 자세하게 기록되어있는 내용을 보면, 당이 자국의 관모를 쓰도록 신라 왕실에 요구했다며 쓰여져 있었습니다. 삼국통일을 이룬 신라 문무왕 4년에 중국 복식을 따르도록 복식을 정비하면서 통일신라와 고려시대를 거쳐 우리나라에는 새로운 왕의 복식이 정착되었습니다.
이렇듯 7세기 중기부터 금관이 나타나지 않은 것도 이와 같은 당의 요구로 신라 왕실에 복제가 근본적으로 바뀌었기 때문입니다.
자연히 7세기 말기에는 이미 당의 복제가 궁중부터 정착되었기 때문에 더이상 신라 왕실에서 금관을 쓸 수 없었으며, 그 뒤에 형성된 고분에서도 금관이 발굴될 수 없었던 것입니다.
다르게 생각해보면, 장례 방식도 당의 전통에 따라 바뀌어서 금관이 7세기에 사라졌다라고 추론할 수도 있겠지만, 장례 방식과 관련한 내용들은 물론 아무런 근거가 없으며, 당이든 또 다른 대국이든 이웃나라의 주검처리까지 간섭을 하거나 규제하는 일이 없었습니다.그러므로 금관은 왕이나 귀족들의 주검을 위해 마련한 장례용 관이 아니라, 신라 왕실의 독창적인 왕관 문화의 산물이라고 추론하지 않을 수 없습니다.


찬란한 우리 문화유산


우리나라의 문화유산, 신라 4세기 후기부터 7세기까지만 나타났던 한국의 문화유산, 우리나라를 대표하는 금관은 전 세계에 내놓아도 다른 문화유산과 비교할 수 없는 화려함을 보여주며, 훌륭하고 가장 찬란합니다.
금관은 숲을 나타내는 다섯 그루의 세움장식, 나뭇가지 끝에 돋아있는 생명의 상징인 움, 달개, 그리고 태아를 상징하는 곡옥으로 금관은 신라시대가 갖고 있는 의미와 특징들을 보여주고 있습니다. 또한, 대표적인 5개의 금관이 갖고 있는 형상은 같지만, 각각의 금관들의 세움장식이 더 곧았는지, 더 굽었는지, 또는 직각인지 아닌지의 차이가 있을 뿐 이러한 모습들이 바로 신라 금관의 고유 양식입니다.
신라의 문화와 역사, 그리고 그 의미가 담겨있는 금관은 세월이 흐르고 흘러도 그 가치는 변하지 않을 것입니다. 한국인으로서 뿌듯하고 우리나라 대한민국이 자랑스러우며, 금관이 변하지 않는 가치입니다.

신라금관1
문득 대학 시절에 박물관에서 봤었던
노랗고 빛나는 금관의 모습이 생각난다.

박물관에서 처음 봤을 때,
금관이 갖고있는 매력에 빠졌고,
내 얼굴보다 컸던 금관에 놀랐다.

신라의 역사를 다 가져다 놓은 듯,
그 역사를 느끼게 해주는
우리 문화유산, 금관

긴 시간동안 존재하고,
처음처럼 그 모습 그대로
존재하는 모습에 감탄했다.

천마총사진 외관
금관의 움식물의 움
저희 아버지는 저에게 '사람은 아는만큼 보인다고' 말씀하곤 했습니다.
금관을 자세히 알기 전까지 금관이 표현하고자 하는 것이 무언인지, 형태가 무엇을 의미하는지 몰랐습니다.
금관의 형태가 김알지 설화의 숲을 표현한 것을 알았을 때, 다섯 그루가 모여 숲을 표현한 것을 알았을 때, 생각하지 못했던 형태들이 하나, 둘 씩 보이기 시작했습니다. 그리고 각 금관마다 갖고 있는 한 그루 나무를 보면, 같은 형태지만 꺾인정도와 각진정도가 차이가 있다는 것을 알게 되었습니다.
한 그루의 나무마다 몇 개의 가지가 쭉쭉 뻗어있고 그 가지 끝에는 '♤' 모양을 띄고 있습니다. '♤' 모양이 무엇을 의미하는지 몰랐을 때, 나를 포함한 많은 사람들은 카드놀이 할 때 봤었던 '♤' 모양이나 복숭아 또는 하트를 거꾸로 뒤집어 놓은 모양으로 봤을 것입니다. 또는 불꽃이나 알라딘 궁전 지붕 모습 등으로 생각했을 것입니다. 나뭇가지 줄기의 끝 부분인 경정과 나무 뿌리인 근단에는 생장점이 있는데, 생장점 부분이 나무의 생장에 중심 역할을 합니다.
나뭇가지 끝마다 화살 촉 모양으로 도톰하면서 뾰족하게 올라 온 움의 모습을 금관의 세움장식 끝 부분에 표현한 것입니다.
즉, 나뭇가지 끝에 돋아있는 '움'이 식물의 태아이자 생명력을 나타냅니다.





생명의 상징 '곡옥'
신라금관 사슴뿔형상세그루나무의 모습을 엿볼 수 있는 금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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